이경은의 체벌거부선언문

2018. 12. 7. 16:34특별 연재/체벌거부선언



나는 체벌의 가해자입니다.

저는 동생을 매로 때렸습니다. 그 전에도 또 그 후에도 서로 치고 박고 싸우면서 서로를 때리기도 했지만, 그 날의 기억은 유독 저에게 선명합니다. 그것은 폭력이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도 그 폭력을 벌하지 않았습니다.

부모님은 저에게 말했습니다. 엄마아빠가 없을 때는 네가 두 남동생의 엄마 역할인 거라고요. 부모님이 둘 다 외출한 날이면 어깨 너머로 배운 요리 솜씨로 어설프게 계란볶음밥이나 국수 따위로 밥을 차렸습니다. 비 오는 여름날 속옷 차림으로 셋이서 손을 잡고 엄마가 다니는 교회에 찾아갔을 때 엄마는 제 뺨을 때렸습니다. 동생들과 셋이 놀러 나갔다가 막내를 잃어버리고 둘만 돌아왔을 때, 아빠는 마당에서 벌벌 떨고 있는 저를 휙 지나치며 내뱉었습니다. "누나가 되가지고 애 하나도 못보고, 쯧" 모두 제가 초등학교를 졸업하기 전에 일어난 일입니다.

그렇듯 위임 받은 부모의 역할은 무거웠습니다. 하지만 그 역할을 내려놓지 않은 것 역시 저의 선택이었지요. 저는 부모처럼 동생들을 통제하려 했고, 폭력을 저질렀습니다. 컴퓨터게임 하루에 한 시간만 하기, 집에서 소리지르거나 뛰거나 문을 쾅 닫지 않기(층간소음 때문), 매일 일기쓰고 천자문 읽기 등이 제가 수호하려 했던 집의 규칙이었습니다. 통제할 수 없는 것을 통제하려 들거나, 혹은 근본적인 원인은 해결하지 못하고 드러나는 갈등만 틀어막는 어리석은 규칙이었지만, 그때는 규칙을 지키지 않고 '무책임하게' 행동하는 동생들이 무던히 미웠습니다.

그 미움과 답답함, 부모와 이웃 주민들에게 혼날까 봐 두려운 마음은 고성과 욕설, 구타로 터져 나왔습니다. 동생들은 설득되지 않는 '비이성적이고 미숙한' 존재이니까 대화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규칙을 지키기 위해서는 동생들이 저를 두려워하도록, 힘으로 제압할 수 있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날, 저는 열살 쯤이었고 막내는 두 살 더 어렸습니다. 그를 때린 이유에 대해서는 기억이 뚜렷하지는 않습니다. 아마도 이런 패턴이었을 것입니다. 막내가 컴퓨터 게임을 계속 하겠다고 떼를 썼습니다. 아니, 다시 말하자면 그는 컴퓨터 게임을 계속 하겠다고 말했고, 저는 그의 말을 무시하고 나오라고 강압적으로 소리치며 끌어내려 했을 것입니다. 그는 화를 내며 발을 구르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저는 소리를 지르지 말라고 명령하면서, 가베(교구의 일종) 부품 중 나무 막대를 찾아 들고 막내를 위협하며 바닥에 앉혔습니다. 손바닥을 보이게 앞으로 내라고 하고, 두 번 혹은 세 번 내리쳤습니다. 그는 손바닥을 감싸 쥐고 엉엉 크게 소리내어 울었습니다. 곧 아래층에서 집주인 아저씨나 아주머니가 올라오겠어, 하는 생각도 들었던 것 같지만.

그 순간 저는 깨달았습니다. 내가 지금 어떤 짓을 하고 있는지. 평생 이 일을 잊을 수 없을 거라는 것도, 또 아무리 빌어도 용서받을 수 없으리라는 것도. 엄마 아빠 혹은 학교 선생님에게 매를 맞을 때 내가 어떤 것을 느꼈었는데, 똑같은 행동을 나보다 약한 동생에게 하고 있다니.

제가 매를 맞을 때 느낀 것은 단지 아픔만이 아닙니다. 부당한 규칙에 따르라는 강요와 벌을 받는 것에서부터 굴욕감과 무력감을 느낍니다. 그 결과가 매를 맞거나 얼차려를 당하는 것일 때는, 상대가 나를 아프게 한다는 자각보다 무력하게 몸을 대고 있거나 우스꽝스러운 동작을 하고 있는 자신에 대한 수치심이 가장 괴롭습니다. 그것은 마음이 깨어지는 경험입니다.

그러고서 약 5~6년 후, 청소년운동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가정과 학교의 규칙들이 마냥 옳고 바뀔 수 없는 것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동생들에게 그러한 규칙을 강요할 이유가 없어졌습니다. 그러자, 소리를 지르며 화내고 센 척을 할 이유가 없어졌습니다. 때릴 이유는 더욱이 없지요. 그러자 관계가 변했습니다. 바뀌어야 할 것은 동생들이 아니었습니다. 잘못된 규칙이고, 나이고, 부모이고, 나와 부모의 폭력을 정당화하고 방조한 사회였습니다.

나는 체벌의 가해자입니다. 하지만 앞으로 평생 체벌을 비롯하여 청소년에게 굴욕감과 무력감, 수치심을 주는 벌을 주지 않을 것입니다. 또 주변에서 그러한 일이 벌어진다면 제지하고, 필요하다면 고발하겠습니다. 가정과 학교에서 억압받는 청소년을 지지하며 체벌을 권하는 사회에 맞설 것입니다.


- 이경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