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우리 아이들’이 아닌 한 명의 유권자로!

2016. 5. 1. 08:32칼럼-청소년의 눈으로

‘우리 아이들’이 아닌 한 명의 유권자로!





“부모님한테 전해주세요”가 시사하는 점


 대의제 민주주의를 채택한 한국이 4년마다 맞이하는 축제의 여파가 거리를 휩쓸고 지나갔다. 바로 국회에서 일을 할 공직자를 선출하는 총선이다! 이 시즌마다 각 정당, 후보들이 곳곳마다 공약이 담긴 현수막을 걸고 거리로 나와 명함을 나눠주며 유권자들에게 인사를 한다. 이 축제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그 누구도 피하기 힘든 거대한 이벤트다. 그러나 여기서 소외되는 이들이 있으니 바로 청소년들이다. 열심히 명함을 나눠주며 인사하고 허리를 숙이다가도 교복을 입거나 앳되어 보이는 사람을 보면 허리를 펴고 무시하거나 명함을 건네주며 “부모님께 전해주세요~”나 “부모님한테 O번 XX당 찍어달라고 해주세요”라고 한다. 이런 태도들이 전해주는 바는 청소년이 정치에서 배제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에 대해 한 청소년은 “교육을 받는 직접적 대상자지만 힘이 없기에 잘못된 정책이 펼쳐지면 조금 억울한 감이 있다.”고 심정을 밝혔다. 청소년은 정치와 가장 가까운 곳에 있으면서도 가장 배제되고 있는 것이다.


청소년을 정치에서 배제하는 생각들


 청소년의 정치적 권리를 인정 못하는 사람들은 흔히들 세가지 이유를 든다.

 첫째, 청소년이 비판적 시각으로 정치를 바라보기에 너무 미숙하다는 것이다. 둘째, 중고등학생들, 특히 고3들은 정치적 권리가 주어진다면 공부에 할애할 시간이 부족해진단다. 셋째로는 ‘신성한 교육의 장’은 정치적으로 중립적이여야 한다는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이 주장들은 꽤 불합리하다. 성숙함의 척도가 나이였던 전통적 시대와는 다르게 문명이 매우 발달한 현시대는 공교육이 보편화되어 있고 인터넷을 통해 많은 정보와 지식들이 공유되므로 정신적 성숙함을 나이로 구분 지을 수 있는 시대는 아니다. 만약 넘쳐나는 정보 속에서 청소년이 물타기에 선동당하기를 걱정한다면 성인 역시 주변인, 언론, SNS 등에 영향을 받는다는 걸 알아야한다. 공부할 시간이 줄어든다? 다행히도 정당이나 후보자에 대한 정보를 습득하고 투표를 한다는 건 그닥 시간이 걸리는 작업은 아니며 만약 정치에 더욱 관심을 가져 이에 많은 시간을 쓴다 하더라도 그것은 개인의 선택이므로 정치적 권리의 부작용이라 할 수 없다. 학교에서는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한다? 교육기본법에 따르면 교육은 민주시민으로서 필요한 자질을 갖추게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학교의 교육이 탈정치적이여야 한다는 것은 애초부터 법에서 명시한 교육의 목적을 망각한 꼴이 되는 것이다. 독일의 예를 들자면 정규수업 시간에 정치, 사회, 경제, 국제 시사에 관한 담론을 배우고 그에 대해 토론을 하는 시간을 가지기도 한다. 민주주의는 교육의 현장에서 출발한다.

 

한편 다른 나라에서는


 많은 나라들이 선거권 제한 연령을 만 18세로 낮추는 추세이며 만 16세로 하향하자는 논의도 치르고 있다. 최근엔 선거권 연령을 만 20세로 두던 일본 역시 만 18세로 낮췄다. 한국은 선거권 연령을 세계에서 유일하게 만 19세로 두고 있는데 다른 나라들은 어떨까?


 쿠바처럼 만 16세부터 선거권이 주어지는 국가도 소수 있으며 스위스와 독일 일부 주, 뉴질랜드의 경우에는 16세부터 지방선거에 참여 가능하다. 또한 브라질, 에콰도르는 18세 이상의 선거 참여는 의무지만 16~18세는 희망자에 한해 참여가 가능하다. 그 외에도 다양하게 청소년의 참정권이 보장되며 그를 위한 공공 서비스 역시 다양하다. 여기서 두 국가의 경우들을 한번 뽑아봤다.


 길거리에서의 폭력을 반대하는 운동을 시작으로 18세에 의원이 된 안톤 아벨, 그리고 11살에 입당해 19살에 의원이 된 구스타프 프리돌린. 스웨덴에서는 이 두 명의 최연소 의원을 찾아볼 수 있다. 이제 멀지 않은 독일의 사례를 보면 14세에 입당해 19세에 의원이 된 안나 뤼어만이 있다. 이들 사이의 흥미로운 공통점은 청소년 때 입당했다는 점과 공교육에서 정치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사회적으로 청소년을 성장중인 시민으로서 바라본다는 점이다. 학교에서는 정치시사 관련 주제로 교과수업이나 토론을 하며 사회적으로는 아동, 청소년을 대상으로 시사 잡지, 방송 등을 제공한다. 사회와 정부가 한 정치적 주체로서 청소년에게 마땅한 정치 교육을 실시하는 것이다.





 우리는 학생도, 아이도 아닌 ‘시민’이다


 정치인이나 후보들이 언론에 나와 자주 입에 올리는 혹은 현수막에 자주 보이는 단어, ‘우리 아이들’. 늘 ‘우리 아이들’을 위한다면서 정책이나 공약을 읊어대지만 그 어느 것도 청소년들의 입장이나 의견이 반영된 것을 찾기 어렵다. ‘우리 아이들’ 프레임에 반응할 법한 친권자들을 타겟으로 할 뿐이다. 청소년들은 정치, 심지어는 교육에서도 설 자리가 없다. 노동 정책 등은 물론 교육감도 택할 수 없고 교육 정책도 선택할 수 없는 신세다. 학교의 주인은 학생이라곤 하지만 주인이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사회에서는 20살이 되면 다 안다거나 20대 돼서 권리를 행사하면 된다고들 말한다. 생일이 지나지 않아 투표를 못한 한 청소년은 “공부는 중요하고 그 때가 있는 경우도 있지만 자신의 생각을 만드는 것은 20대가 된다고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라고 의견을 표했다. 우리는 현재를 살아가지, 미래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니다. 미래에 예정된 권리를 바라보며 원치 않은 미래를 하염없이 받아들이고만 있을게 아닌, 지금 당장의 권리를 요구해야 할 때이다.



- 후긴

(아수나로 광주 활동가/본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