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7. 2. 21:30ㆍYosm Special
청소년은 빈곤하다
우리는 청소년이 ‘빈곤하다’는 생각을 해보았을까? 청소년의 빈곤이 낯선 이유는 우리가 생각하는 빈곤의 개념이 ‘기본적인 삶을 살 수 없을 정도로 돈이 없는 경우’에 갇혀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빈곤에 대한 다양한 연구들은 인간의 권리와 연결 지어 빈곤의 정의를 훨씬 더 확장했다. UNDP(국제연합개발계획)는 ‘인간 빈곤’이라는 용어를 사용해 빈곤을 설명하면서, 인간은 타인에게 존경받을 수 있는 자유롭고 존엄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발전해야 하는데, 그를 위한 기본적인 선택의 기회를 부정당한 상태를 인간 빈곤으로 정의했다. 즉, 인간 빈곤을 해결한다는 것은 단순히 먹을 음식이 있는 상태를 넘어 내가 원하는 음식을 먹을 수 있고, 의식주 해결이 전부가 아니라 자유롭고 존엄한 삶을 위해 사회적, 문화적 활동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과 같다. 따라서 청소년 빈곤에 관해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청소년이 어떠한 자원과 기회를 보유하고 있는지, 그로 인해 얼마나 존엄하고 품위 있는 삶을 살고 있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부모의 경제적 지원이 청소년 빈곤을 해결할까?
청소년이 빈곤할 수 없다고 생각되는 이유 중 하나는, 청소년은 보통 자녀로서 부모 아래에서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을 제공받는다고 인식되기 때문이다. 물론, 실제로 대부분의 청소년이 부모로 인해 임금노동을 하지 않고도 의식주를 제공받는다. 청소년이 가진 자원을 고려했을 때 부모의 경제적 지원은 청소년에게 중요한 자원이다. 그러나 청소년이 부모에게 경제적으로 지원받는 것을 넘어 실제적으로 종속되어 있는 만큼, 부모의 경제적 지원은 오히려 청소년이 자유롭고 존엄한 삶을 즐기는 것을 방해한다.
먼저, 부모는 청소년 자녀가 자유롭고 존엄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다양한 선택의 기회를 보장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청소년 자녀의 취향에 대해서 신중하게 물어보기보다 ‘일단 부모가 사 주는 것에 감사할 줄 알라’고 윽박지르는 사회에서 청소년의 선택권은 무시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부모의 일방적인 제공을 거부하고 자신의 취향을 주장하는 것은 철없고 이기적인 것처럼 취급되곤 한다. 더불어, 청소년 자녀가 스스로 진로를 결정하고 관련 활동을 하기 원할 때 그것이 부모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것이 아닐 경우 청소년 자녀는 그런 활동을 할 기회를 박탈당하기도 한다.
청소년 자녀가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할 기회는 대개 부모가 주는 용돈으로부터 생겨난다. 그러나 청소년이 부모로부터 용돈을 받는 과정은 그 자체로 눈치 싸움과 죄책감, 그리고 불공평한 합의의 과정이다. 요즘것들에서 자체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한 답변자는 “부모랑 싸운 뒤에 용돈을 달라고 했을 때 눈치가 보였다.”라고 답했으며, 또 다른 답변자는 “자신의 소비 패턴에 대해 부모가 지적할 때마다 용돈을 줄일까 봐 걱정된다.”라고 답했다. 또, 많은 청소년이 부모에게 용돈을 받는 것에 대해 ‘죄송하다‘고 이야기했는데, 용돈이 부모의 일방적인 시혜로 여겨지기 때문에 제대로 요구하기가 어렵다는 것이 드러난다.
한편, 부모가 청소년 자녀에게 용돈을 줄 때, 청소년 자녀가 자유롭고 존엄하게 살아가기 위해 얼마만큼의 돈이 필요한지 고려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2014년, 전라북도청이 전북 지역 중·고등학생 1,3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청소년의 월평균 용돈 금액은 ‘3만 원 이상 5만 원 미만’이 29.1%로 가장 많았고, 그 다음으로는 ‘5만 원 이상 10만 원 미만’이 27.9%, ‘3만 원 미만’ 26.6%를 차지했다. 요즘것들이 자체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대부분의 청소년 답변자는 돈이 부족해서 문화생활에 어려움이 있다고 답했다. “편의점에서 주로 식사를 한다.”, “코인 노래방이 일반 노래방보다 저렴해서 자주 간다.”, “콘서트를 한 번 가기 위해서는 한 달간 친구들이랑 아예 나가서 놀지 못한다.” 등의 답변이 줄을 이었다. 이처럼 경제적인 이유로 청소년이 문화생활을 즐기지 못한다는 것은, 보통의 사람들이 즐기는 문화 활동에서 청소년이 배제되는 경향이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역의 문화 시설에서 청소년을 찾아보기 어렵고, 더 나아가 그것은 당연하게 여겨진다.
일하지 않으면서 돈을 받는 것에 대한 혐오
이 외에도, 청소년은 부모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기 때문에 많은 복지 대상자들이 겪는 혐오를 마찬가지로 겪게 된다. 이러한 혐오는, 살기 위해서는 일을 해서 돈을 벌어야 한다는 가정이 전제된 사회에서 일을 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겪는 것이다. 청소년의 학습 노동을 인정하지 않고, 제도적으로 청소년이 임금노동에 참여하는 것을 차단하는 사회는 오히려 청소년을 사회의 무임승차자처럼 취급한다. 그 속에서 청소년 자녀는 자신이 돈을 받은 만큼 부모가 좋아할 만한 일을 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갖고, 그렇게 하지 못했을 때 자신이 돈을 받을 자격이 없는 존재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설문조사 답변 중에는 “성적도 안 좋은데 돈을 받기가 미안했다.”라는 답변이 있었다. 사회적으로 청소년의 의무가 공부라는 인식이 퍼져 있기에 청소년은 성적이 좋아야 그 대가로 돈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을 내면화하게 된다.
용돈이 수입의 전부인 아동과 청소년은 사회적으로 장려되고 품격 있다고 여겨지는 문화생활을 누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또 다른 양상의 혐오를 재생산한다. 예를 들어, 많은 청소년들이 저렴한 가격에 시간을 보낼 수 있기 때문에 PC방에 자주 가는데, PC방을 많이 간다는 이유로 청소년 전체가 게임 중독에 걸린 환자처럼 취급되는 면이 있다. 구매력이 부족한 청소년들이 직접 물건을 구매하지는 못하고 매장에 들어가 둘러보기만 할 때가 많은데, 그래서 어떤 매장에서는 청소년이 매장에 들어오는 것을 꺼리기도 한다.
이렇듯 청소년이 부모에게서 경제적 지원을 받는다는 것은, 정확히 말하면 청소년은 무조건 부모의 경제적 지원만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현실은 빈곤을 해결하기보다는 오히려 넓은 의미의 청소년 빈곤을 뒷받침하는 요인이 된다. 부모에게 경제적으로 종속되어 있는 청소년은 자신의 기본권인 경제적 권리를 부모와 협상해야 하는 위치에 있다. 내가 살아가는 데 무엇이 필요한지를 부모에게 설명하고 설득해야 하고, 부모의 허락을 받지 않으면 그러한 것들을 얻을 수 없을 때가 많다. 또, 자신이 가진 것들을 언제든 부모에게 빼앗길 수 있을 정도로 소유권이 불안정하기도 하다.
이러한 것들이 정당한지에 대해서 우리 사회는 청소년의 입장에서 판단해보는 경험이 매우 부족하다. 청소년을 부모의 종속물로 보지 않는 것, 청소년을 경제적 주체로 인정하는 것이 청소년 빈곤을 해소하는 중요한 열쇠다.
- 치이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