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5. 23. 19:13ㆍ극한직업청소년
한 번 눈치 채고 나면, 그것을 알기 전으로 절대 되돌아갈 수 없다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여성혐오와 페미니즘이다. 익숙하게, 숱하게, 그리고 자연스럽게 들어온 여성혐오 발언이 날카로운 가시의 형태가 되어 고막에 거슬리게 박혀올 줄 그 누가 알았겠는가? 나는 5.17 강남역 살인사건을 계기로 페미니즘에 관심을 가진 다수 중 하나이다. 페미니즘의 뜻을 찾아보고, 여성혐오 발언의 종류를 알아보고, 본격적으로 공부를 해보겠다는 포부를 다지며 《우리에겐 언어가 필요하다》를 읽게 되기까지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얼마나 무지했던지 앞에서 말한 《우리에겐 언어가 필요하다》를 읽을 때는 손가락에 걸리는 각각의 페이지가 내게 큰 충격을 안겨주기까지 했다.
대부분의 고등학생은 아침 8시 20분부터 밤 9시 반까지 학교에서 생활한다. 집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학교라는 건물 안에서 지내는 것이다. 페미니즘을 공부하고 난 뒤로 내 생활에는 변화가 생겼다. 첫 번째는 이전까지는 같이 웃었던 여성혐오를 바탕으로 한 선생님들의 농담에 웃지 않게 되었다는 것. 두 번째는 그것을 메모해 놓고 같은 동아리 아이들과 얘기하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 그리고 세 번째로는 친구의 여성혐오 발언을 강심장을 가지고 지적하게 된 것이다.
며칠 전 교감 선생님께서 2학년 전교생에게 예방 교육을 하신 적이 있었다. 주제는 흡연 예방, 성폭력 예방, 학교폭력 예방, 자살 예방이었다. “남자는 어쩔 수 없는 늑대이므로 여자가 조심해야 한다.”, “여러분들도 예쁜 아기를 낳아야 하니 흡연은 하지 마라.”, “능력 있는 여자가 돼야지. 트레이닝복을 입고 슬리퍼를 신고 다니면 별 볼 일 없는 여자가 된다.”와 같이 정말 무지한 말들이 가득 쏟아져 나온 자리였다. 몇몇은 활짝 웃으며 “네!”라고 대답하며 웃는 자리였지만, 반대로 나와 동아리 부원들을 포함한 몇몇은 눈살을 찌푸리고 고개를 돌렸다. 당장 일어나서 ‘그런 말씀은 하시면 안 된다’고 외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할 수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 자리에 앉아 문제의 말들을 핸드폰 메모장에 받아 적는 것뿐이었다.
학생의 신분은 정말 많은 제한을 받는다. 자신의 대학 진로를 책임질 생기부(학생생활기록부)를 관리하는 선생님께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바를 제대로 펴지 못하는 신분이다. 무슨 불이익이 돌아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확실한 결과가 있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막연하다고는 할 수 없는 공포심인 것이다.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내가 이 자리에서, 이 신분으로 목소리를 낸다고 해서 무언가 달라지는 것이 있을까. 아직도 여학생들은 치마를 입고 다리를 벌리면 지적을 받는다. 아직도 소수의 남녀공학 학교에서는 공부에 집중해야 할 남자아이들의 시선을 뺏을 수 있다는 명목으로 여자아이들의 연주황색 스타킹 착용을 금지한다. 아직도 여학생들이 다니는 중·고등학교는 이름에 여(女)가 들어간다. 우발적으로 튀어나오는 친구의 혐오 발언을 지적한다고 해서, 선생님께 익명의 피드백 편지를 전한다고 해서, 자리에 앉아 페미니즘을 공부한다고 해서 뭐가 달라질까, 같은 의심이 들 때면 나는 생각한다. 이전에 비하면 정말 많이 변했다고. 그리고 우리는 앞으로도 끊임없이 변할 것이다. 우리는 끊임없이 말할 것이다. 많은 시간과 노력이 더해져, 더 많은 목소리가 모여 평등하게 바뀐 세상을 굴러가게 하길 기대해본다.
박세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