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12. 6. 19:03ㆍ칼럼-청소년의 눈으로
"그러나 분명 청소년은 화초가 아니라 자신의 욕망을 가진 인간으로 존재한다.
그 욕망을 함부로 삭제당하지 않기 위해서 청소년 역시도 기본적인 가정 및 사회의 운영과정에 참여하고 스스로의 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은 면제가 아니라 배제다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고’ 살던 때가 있었다. 가사노동을 거의 완전히 면제받는 삶. 청소년기였다. 나의 부모는 내가 가사노동을 할 바엔 차라리 공부를 한 자라도 더 하기를 바랐고, 그것이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가정에 훨씬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했다. 나 역시 그런 생각에 동의했다. 흔히 청소년기는 공부할 때라고들 말하는데다 요리든 빨래든 하는 방법조차 잘 모르는 내가 굳이 나서서 가사노동을 할 이유가 뭔가 싶었다. 대학의 간판에 따라 경제력과 삶의 질이 달라지는 입시경쟁과 학력‧학벌주의 사회에서 우리 가족은 나를 전략적으로 가사노동에서 배제했다. 그러나 온 가족이 일사분란하게 업무를 분배해가며 입시에 헌신했음에도 불구하고 나의 대학입시는 폭삭 망해버렸다. 내가 그렇게 스무 살의 백수가 된 순간부터 가족들은 내게 온갖 가사노동을 요구했다. 실로 급격한 변화였다. 열아홉까지 밥 짓는 법―엄밀히 말하면 밥솥을 작동시키는 법―조차 모르고 살았는데, 한순간에 부모는 내가 가사노동에 열심이기를 바랐다. ‘지금까지 하나도 알려주지 않았으면서!?’, ‘내가 대학에 갔어도 이랬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나는 이것이 부당하다고 결코 말할 수 없었다. 나는 여전히 경제적인 부분에서 부모에게 의존하고 있었기에 가족 구성원으로서 밥을 축내지 않고 내 몫을 다해야 한다는 압박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가족들이 나에게 요구하는 것이 순식간에 달라졌다는 점에서 한번 놀랐다. 그리고 내가 편하게 면제받았다고 생각해왔던 것이 실상 나 자신을 쭉 그에 무력하고 무능하게 만들고 있었다는 점에서 또 한 번 놀랐다. 나는 가족구성원으로서 충분한 결정권을 갖지 못하고 배제되어 왔던 것이다. 가사노동은 단순한 일거리를 넘어 ‘내가 무엇을 먹을지, 무엇을 입을지, 어떤 상태의 공간에서 지낼지’ 등을 결정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런 결정 과정에 나는 청소년인 자식으로 사는 내내 거의 참여하지 않았고 참여할 수 없었다.
결정권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기를 반복할 때 일종의 정신승리이자 방어기제로 그것을 스스로 양도하기를 선호하게 되면서 자신의 욕망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있다. 예컨대 학교가 교복을 강제하는 것에 익숙해진 청소년이 매번 옷 고르기가 귀찮다며 이를 옹호하는 것 말이다. 나는 그런 쪽이었다. 청소년기 내 입맛은 부모의 입맛과 아주 유사했고, 내가 입은 옷은 거의 부모의 취향이었으며, 내가 하는 것은 대부분 나의 선택인지 부모의 선택인지 그 경계가 모호했다. 결국 그건 결코 나를 위한 면제가 아니었다. 나와 가족은 입시를 빌미로 그저 청소년인 나를 가정에서의 의사결정 과정에서 배제하고 오래도록 나의 무無권리 상태를 유지해왔다. 비청소년이 된 이후 내가 여러 가지 가사노동을 익히며 가정 내에서 나의 주권―선택권을 되찾고 누리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과 시행착오가 필요했다.
가정에 귀속되는 청소년
청소년과 관련한 많은 억압이나 혐오는 청소년이 경제적 권리를 쉽게 누릴 수 없다는 점에서 비롯된다. “너 용돈 끊는다”라든지 “너 그럴 거면 내 집에서 나가!”라는 친권자의 으름장은 청소년에게 대개 실질적인 협박과 공포로 작동한다. 개인의 욕망을 실현하는데 돈이 필수적으로 요청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제력을 상당부분 틀어쥐고 있는 친권자의 요구나 폭력을 청소년인 자식이 거부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청소년은 친권자의 입맛에 얼마나 부응하는지, 가정과 사회가 요구하는 학생‧청소년상에 얼마나 부응하는지에 따라 ‘효녀/효자’와 ‘후레자식’을 오가게 된다.
청소년이 친권자와 분리된 자신만의 경제적 권리를 아예 가질 수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사회는 법제도나 인식을 통해 청소년이 이를 갖는 것을 어렵게 만든다. 이미 경제적 권리를 누리고 있는 청소년 노동자들이 분명 존재하지만 그들의 존재는 삭제되거나 왜곡되기 십상이다. 청소년의 노동은 그리 긍정적으로 혹은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는다. 공부 못하는 애들이나 노동을 한다는 편견을 갖거나, 가정의 경제적 상황이 열악한 청소년이나 노동을 한다는 식으로 축소되거나, 청소년의 임금노동은 그저 자기가 갖고 싶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것을 사려고 하는 ‘용돈벌이’라고 폄하되거나 해서 말이다. 이런 생각은 청소년이 노동을 쉽게 그리고 기꺼이 고려하지 못하게 만든다. 사회 전반에 걸친 노동자에 대한 열악한 대우, 특히 청소년 노동자에 대한 빈번한 인권침해나 ‘밑바닥 노동’으로 명명할 수 있을 정도의 열악한 상황은 덤이다. 이는 노동을 공포스러운 것, 피하고 싶은 것으로 만들어 청소년을 가정에 얽매고 스스로 입시경쟁에 매진하게끔 강요하는 하나의 흐름은 아닌가.
화초가 아니라 인간이기에
내가 나 스스로의 결정권을 누리지 못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은 순간은 ‘내가 먹는 것이 곧 나’라는 이야기를 듣고 채식을 시작하기로 마음먹었을 때였다. 내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내 몸을 구성하리라는 건 당연할진대 나는 그간 내가 무엇을 먹거나 먹지 않을지를 그다지 고민해본 적이 없었다. 친권자의 돈으로 사온 식재료로 그들이 해준 음식을 먹고, 학교에서도 마찬가지로 그저 나오는 급식을 먹을 뿐이었다. 순간순간의 호불호로 그 음식을 먹느냐 마느냐를 결정하는 문제가 아니다. 내가 어떤 과정으로 생산, 유통된 식재료를 어떻게 먹을 것인지 결정하는 과정에 참여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먹는 일 외에도 일상의 모든 영역에서―무엇을 입을지, 어디에서 살지, 어떤 교육을 누릴지 등― 청소년은 어리고 어설프다는 이유로, 경제력을 갖지 못하거나 많지 않다는 이유로 하나의 온전한 참여-결정의 주체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분명 청소년은 화초가 아니라 자신의 욕망을 가진 인간으로 존재한다. 그 욕망을 함부로 삭제당하지 않기 위해서 청소년 역시도 기본적인 가정 및 사회의 운영과정에 참여하고 스스로의 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부당한 폭력에 대해 말하고 저항하기도 쉬워진다. 스무 살 이후 내가 가사노동에 열심이었던 것은 부모의 닦달 때문만이 아니라 이런 깨달음 때문이었다. 결정과정에 참여하는 것은 내 몫, 내 목소리를 지킬 기반이 된다. 권리가 없다고 여겨지는 존재들은 언제나 폭력에 쉽게 노출된다. 나는 그런 폭력에 반대하고, 그에 저항하고 싶다. 내 자신이 특별히 ‘어린 여성’이라는 이유로 온갖 공간에서 만만하게 여겨지는 것을 참을 수 없다. 그렇기에 나는 온실 속의 화초이기를 거부한다. 풍파 속에 놓이더라도 인간으로 살 것이다.
글: 호야(십대섹슈얼리티 인권모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