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청소년인 나의 출산과 육아 이야기 (2) 다른 가정을 꾸리고 싶어서

2016. 10. 16. 16:12틴스페미니즘

육아라는 게 너무 힘들어보여서 제가 과연 저걸 할 수 있을까 고민을 했어요.”

 


: 임신한 건 어떻게 알게 된 거예요?

: 피임을 안 하니까 불안해서 매달 임신테스트기로 테스트를 했었거든요. 그날도 생리가 늦어져서 테스트기를 썼는데 소변이 닿자마자 진하게 두 줄이 나왔어요. 그래서 남편 불러서 산부인과 가서 진료를 받았는데 임신이 맞다고 하대요. 그 때가 남편이랑 연애한 지 100일 정도 되던 때였어요. 낙태할 거냐고 병원에서 물어봤어요. 낙태할 거면 일주일 안에 결정하라고, (중절시술이 불법이니까)비용은 현금으로 준비해야 하고 30만원이랬어요. 영양제 같은 거 옵션 더 하면 50만원이고

  남편은 당연히 낳자고 그랬고요, 저는 일주일동안 고민을 했어요. 저 아는 친구들 중에 애 키우고 있는 친구들 있거든요. 옆에서 보면 그 육아라는 게 너무 힘들어보여서 제가 과연 저걸 할 수 있을까 고민을 했어요. 하지만 진짜 제 가족이라고 할 만한 가족을 갖고 싶은 마음도 커서 낳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던 것 같아요.

 


: 정현 씨가 바라시는 다정한 가족을 꾸리는 데는 남편의 역할도 중요할 텐데, 지금 남편에 대해서 이 사람과 가족을 꾸리는 게 괜찮겠다는 생각이 드셨어요?

: 저는 일단 남편과 살지 않아도 애기랑 저랑 둘이 사는 것도 괜찮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낳기로 결정한 것도 있고. 시간이 지나면서 보니까 남편도 안 좋은 점들도 있지만 잘해줄 땐 잘해주니까. 제가 임신하고 정신병동에 입원한 적이 있었는데 그 때 야근이 있는 날만 아니면 매일 저를 찾아왔거든요. 그 모습 보면서 결혼해서 같이 살아야겠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 정신병동엔 어떻게 입원하시게 된 거예요?

: 제가 임신하고 집에서 쫓겨나서 미혼모 시설을 가게 됐어요. 저는 임신한 거 부모에게 안 알리고 있었는데 남편이 차라리 일찍 알리는 게 낫다고 하면서 양복을 입고 화과자 사들고 저희 집에 와서 저 임신했다고 결혼하게 해달라고 부모한테 말했거든요. 그 때 아빠가 저한테 집 나가라고 했어요. 엄마는 낙태하라고 했고. 저는 그날 캐리어에 짐 싸들고 집에서 나갔고, 남편도 당시엔 자기 부모님이랑 살고 있었으니까 저는 일주일정도 모텔 같은 데 전전하다가 미혼모 시설로 입소했어요

  시설에 입소를 하면 처음에 정신건강 테스트를 하거든요. 그 때 제 정신건강에 문제가 있다고 나왔는지 병원으로 연계가 돼서 다시 검사를 했는데 제가 경계선 인격 장애가 있대요. 3주정도 입원해서 치료받고 했어요. 비용은 다 지원이 돼서 무료였고요.

 


: 그랬군요. 그럼 정신병동 퇴원하고 나서는 미혼모 시설에서 지내신 거예요?

: . 원래 미혼모 시설 입소하려는 사람이 워낙 많고 시설은 부족해서 입소하려면 대기가 길어요. 그래서 보통 임신 4개월 이상 되고 나서 입소하고 막달 돼서야 입소하는 사람들도 있고. 그런데 저는 운이 좋아서 그 시설에 먼저 입소한 미혼모 친구가 있었거든요, 그 친구가 제가 임신하고 쫓겨나서 갈 곳 없이 길거리에서 노숙한다는 식으로 과장해서 말을 해줘서 대기 안 기다리고 일찍 들어갈 수 있었어요. 그렇게 그 시설에서 10개월 정도 지냈어요.

 


학교에서 받은 성교육은 수많은 정자들이 헤엄쳐서 난자한테 가는 거나 알려줬는데 미혼모 시설에서 받은 교육들은 훨씬 자세하고 도움이 됐어요.”

 


: 그 미혼모 시설은 어떤 곳이었나요?

: 개신교 재단에서 운영하는 곳이었던 거 같아요, 한 달에 한 번씩 예배를 했어요. 시설은 괜찮은 편이었어요. 2인실도 있긴 했는데 저는 1인실만 썼어요. 육아에 대한 교육도 해줬고, 입양설명회도 하고, 모유수유 방법이나 이유식 만드는 법도 배우고 부모교육도 받았어요. 학교에서 받은 성교육은 수많은 정자들이 헤엄쳐서 난자한테 가는 거나 알려줬는데 시설에서 받은 교육들은 훨씬 자세하고 도움이 됐어요. 시설에 사회복지사 선생님도 있어서 복지 혜택 받을 수 있는 것 다 받을 수 있게 도와주고, 구청이나 은행 갈 때도 같이 가줬고요

  거기 선생님들은 어린 사람한테도 반말하지 않고 OO, 라고 부르는 대신에 OO씨라고 부르는 식으로 존중을 해주셨어요. 하나 불편했던 거는 저는 늦게까지 자고 싶은데 아침 9시만 되면 창문을 열고 이불을 개는 식으로 깨우셔서 늦잠 못 자는 게 불만이었고요, 시설 안에서도 브래지어를 하고 다니라고 해서 그거도 좀 불만이었는데 전반적으로 시설 생활은 괜찮았어요. 미혼모 시설이니까 거기서 지내는 사람들 다 미혼이기는 한데 청소년도 있고 비청소년도 있고 그랬어요.

 


: 임신하셨을 때나 출산하고 나서의 경험 중에, 이전에 생각했던 것과 실제가 달랐던 게 있었나요?

: 꽤 많았어요. 보통 TV에 나오는 임산부는 깨끗한 피부의 동그랗게 나온 배를 가지고 있잖아요. 저는 임신하면 배가 그렇게 되는 줄 알았는데 실제로는 튼살이 엄청 생기더라고요. 임신하니까 허리도 아프고 소화도 안 되고 관절 하나하나가 찌그러진 페트병 같이 느껴졌어요. 임신하면 힘든 건 알았지만 그 정도라고는 아무도 안 가르쳐줬으니까요. 그리고 저는 태아가 저절로 알아서 때 되면 머리가 아래로 돌아가는 줄 알았거든요. 근데 애가 저절로 안 돌아가는 거예요. 그래서 태아를 돌리는 체조를 해서 돌려놓았어요

  또 시설에서 교육 받을 때 모유를 먹일 때는 유륜까지 깊숙이 넣어야 하고 귀와 어깨를 일직선상으로 만들어야 하고 이런 거 배우거든요. 애기 인형 가지고 연습도 해보고. 그런데 진짜 애기는 그 인형이랑 너무 다른 거예요. 저는 애기가 알아서 젖을 물고 빨 줄 알았어요. 근데 배고파하면서도 젖을 잘 물지도 않고 계속 움직이고 그러니까 수유하는 게 너무 힘든 거예요. 모유수유 해야 하니까 밤에도 수시로 깨서 젖 물리고. 그래도 요즘은 좀 나아져서 여섯 시간 정도는 자는 거 같아요.


임산부는 롤링스톤즈 티 같은 거 안 입는다고 생각하나 봐요.”


 


△ 롤링스톤즈 로고의 변형


: 임신하셨을 때 주변의 태도나 시선은 어땠던 것 같아요?

: 지하철이나 버스 탔을 때 가끔 사오십 대쯤 되는 사람들이 막 오지랖 떨면서 애가 애를 키우네그런 식으로 제 앞에서 말하고 그랬었어요. 대놓고 몇 살이냐 물어보기도 하고. 저는 그냥 무시할 때도 있었고 싸우기도 했었어요. 누가 저한테 몸을 어떻게 굴리면 그 나이에 임신하냐고 해서 제가 욕을 하고 싸웠어요. 그러다 제가 먼저 다음 정거장에서 내렸고요. 주로 그런 말 하는 사람들은 나이 많은 사람들이었어요

  생각보다 임산부한테 자리도 잘 안 비켜줘요. 진짜 어이없었던 적이 있었는데, 누가 임산부 석에 앉아 있길래 제가 그 때 배도 불러 있었고 가방에 임산부 고리 달고 그 앞에 딱 섰거든요. 그런데 그 앉아있는 사람이 일어나지도 않고 그 임산부 고리를 손으로 만지면서 보는 거예요. ‘이거 뭐예요?’ 물어보길래 제가 임산부 고리라고 했는데 그래도 자리에서 안 일어나더라고요. 한번은 어떤 분이 저 보고 자리 비켰는데 뒤에 어떤 남자분이 잽싸게 달려가서 앉아버린 적도 있어요

  제가 스웨터나 파스텔 톤 같은 옷 입으면 그래도 자리를 좀 비켜 줘요. 근데 제가 롤링스톤즈 써져 있고 징 박힌 검정 티 같은 거 입고 있으면 안 비켜주더라고요. 임산부는 롤링스톤즈 티 같은 거 안 입는다고 생각하나 봐요.

 


: 사람들의 머릿속에 임산부 스테레오타입이 존재하나보군요. 출산하시고 나서 힘든 거는 없었나요? 산후우울증이라든지.

: 산후우울증 있었어요. 처음에 한 달 정도 애 젖 주면서 울고 그랬어요. 의사가 모유수유 하지 말고 항우울제를 먹으라고 했는데 그냥 약 안 먹고 모유수유를 계속했어요. 그런데 미혼모 시설 나오고 남편이랑 같이 살면서 양육을 저 혼자가 아니라 같이 하게 되니까 우울증이 나아진 거 같아요. 남편이 양육을 같이 하니까 훨씬 낫긴 한데, 아무래도 애가 울면 더 먼저 달려가는 쪽은 저고, 제가 좀 더 많이 신경을 쓰죠.

 


: 그러면 미혼모 시설에 계시다가 출산하고 이 집으로 이사 오신 거예요?

: 애 낳고 미혼모 시설에서 조리 좀 하다가 시댁에서 잠깐 지냈어요. 시댁에서 지낼 땐 시어머니가 애 봐 주시고 밥 해주시고 그랬고요. 그러고 나서 이 집으로 이사를 온 거예요. 이사 온 지 열흘밖에 안 됐어요.

 


저는 미성년자니까 제가 낳았어도 제 아이가 중환자실 입원하는 데 서명을 할 권한이 저에게 없는 거예요.”

 


: 시댁이나, 원가족과의 관계는 지금은 어떤가요?

: 애가 갓 태어났을 때 신생아 빈호흡 증상이 나타나서 잠깐 중환자실에 입원을 했었어요. 근데 혼인신고도 안 돼 있고 저는 미성년자니까 제가 낳았어도 제 아이가 중환자실 입원하는 데 서명을 할 권한이 저에게 없는 거예요. 미성년자가 낳은 아이는 그 미성년자의 친권자가 친권을 행사한대요. 그 때 저희 엄마를 불렀죠. 그 때 처음으로 사돈끼리 만난 거였어요. 그 이후로 저랑 원가족이랑은 그냥 가끔씩 연락하고, 예전 이야긴 되도록 안 하고 지내고 있어요

  이 집 보증금은 시댁에서 도와주셨고, 저희 집에선 TV랑 가전제품 같은 거 사 주셨어요. 시어머니랑은 자주 통화를 해요. 저에게 기대하시는 건 딱 전형적인 며느리 역할인데, 저는 원래 모르는 사이였는데 갑자기 가족같은 가까운 사이처럼 된다는 게 어색하고 낯을 가려서 그게 좀 힘들기는 해요. 나중에 들은 얘긴데 시어머니가 제 엄마한테 ‘(임신했다는 얘기 들었을 때)알아서 지우고 올 줄 알았다고 이야기하셨다 하더라고요.

 


: 지금 경제적으로는 어떻게 생활하시는 거예요?

: 남편 아버지가 가게를 이 동네에서 하시는데 남편이 거기서 일을 해요. 그래서 집값이 비싸도 강남에 집을 구한 거예요. 저는 지금 돈은 벌수가 없고. 애기가 유치원 들어갈 때쯤 되면 자격증을 따서 일을 할 거예요. 돈을 안 버는 게 너무 답답해요. 아무리 남편 돈을 쓰면 된다지만 남의 돈 쓰는 느낌이고 제가 사고 싶은 걸 맘대로 못 산다든지 눈치가 보여서요.

 


: 국가에서 지원해주는 것은 뭐가 있었나요?

: 국민행복카드라고 나라에서 임신하면 50만원 주는 게 있는데 청소년이면 거기에 120만원을 더 줘요. 저는 그걸로 병원 가서 진료 받고 보약 지어먹고 그렇게 썼어요. 그 카드의 돈은 출산예정일 이후 60일까지 써야 하고 그 이후엔 소멸돼요. 또 저는 긴급복지로 주는 해산비를 받을 수 있는 자격이 돼서 60만원을 또 받았어요. 이제 받을 수 있는 건 육아수당인데 어린이집에 안 보내고 가정에서 애를 키우면 태어난 지 12개월까지는 20만원, 24개월까지는 15만원 이런 식으로 매달 받을 수 있어요.

 


: 그렇군요. 아까 애가 유치원 갈 때 되면 일을 하고 싶다고 하셨는데, 그 외에도 앞으로는 어떻게 살아야겠다는 계획이 있나요?

: 일도 하고 싶고, 공부도 더 하고 싶어요. 검정고시는 합격을 해서 지금 고졸인데 원래는 대학 갈 생각이 없었거든요. 근데 뭐라도 좀 더 배우면 좋지 않을까 싶어서 대학을 가려고 생각을 하고 있고. 악기도 배우고 싶어요. 집은 저희가 신혼부부고 애도 있으니까 임대주택 순위가 높더라고요. 그래서 임대주택으로 나중에 옮기려고 알아보고 있고요. 개인적으로 시간이 좀 더 생기게 되면 여성운동이나 운동단체에서도 활동하고 싶어요.

 


저는 애가 저를 윗사람이 아니라 동등한 사람으로 대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 예전에 청소년운동단체에서도 활동하셨고, 원가정에서 있었던 일들도 있고 하니까 부모자식 관계 맺기에 대해서도 고민이 있으실 거 같아요.

: . 저는 애가 저를 윗사람이 아니라 동등한 사람으로 대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일단 지금은 시설에서 부모교육 받을 때 애착형성이 중요하다고 일관된 양육태도를 가져야 한다고 배워서 애가 울면 바로바로 달려가고 방치되지 않게 하고 있어요. 그런데 부모와 자식이 동등한 관계를 맺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알려주는 곳이 없어요. 저 혼자 방법을 생각해야 하는데 어려워요. 남편하고도 이야기를 하는데 남편은 애를 때리면 안 되지정도로만 생각하고 이 문제를 저만큼 고민하지는 않아요.

 


: 지금 생각해보시기에는 처음 출산을 결정하고 결혼을 결정할 때 기대하셨던 것처럼, 다정한 가족을 꾸려나갈 수 있을 것 같으세요?

: .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남편하고도 이야기를 해서 피임은 이제 하게 됐고, 옷차림에 대한 간섭도 제가 하지 말라고 해서 조금씩 고쳐지는 중이에요. 이제는 전에처럼 노골적으로 간섭은 안 하고 이거 입는 게 더 낫지 않을까?’하는 식으로 은근하게 이야길 하긴 하지만.

 


: 이제는 양육도 하셔야 하고 여러 가지로 책임져야 하는 게 많아지셨는데, 아쉽거나 하는 건 없나요?

: 제가 원래 노래방을 좋아해서 되게 자주 갔었는데, 임신하고는 딱 두 번 갔었고 애 낳고는 며칠 전에 처음으로 갔었어요. 또 애 낳고 모유수유도 해야 하고 하니까 밖에 잘 못 나가잖아요. 그래서 누굴 만나려면 집으로 불러야 하니까 사람도 잘 못 만나고. 요즘은 거의 애랑 남편만 보는 거 같아요. 그래서 친구들 초대해서 집들이를 할까도 생각했는데 힘들 거 같아서 엄두가 안 나요. 그래도 전에 술도 많이 마셔봤고 담배도 펴 봤고 클럽도 다녀 봤고, 많이 놀아봤으니까, 할 건 다 해봤으니까 괜찮은 것 같아요.

 


: 이야기해주셔서 감사해요. 혹시 마지막으로 덧붙이고 싶은 말씀이 있나요?

: 육아카페 같은 데 가입하려고 하면 성인만 가입할 수 있게 해놓은 곳이 많아요. 육아용품 이벤트 같은 것도 성인만 응모할 수 있게 해주고. 청소년인 부모도 존재하는데 이런 것 좀 고쳐졌으면 좋겠어요.



<< 여성청소년인 나의 출산과 육아 이야기 (1) 나를 밀어내던 공간들  


 

 - 인터뷰/정리 : 쥬리 기자 (십대섹슈얼리티인권모임)

 

 

* 이 기사는 청소년신문 요즘것들과

십대섹슈얼리티인권모임이 공동 기획한

<틴스페미니즘>의 연재 기사입니다.

주로 청소년의 성적 자기결정권과

여성청소년이 겪는 복합차별 등을 다룹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