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취와 체념을 실습하다 - 효율 앞에 도돌이하는 특성화고 직업교육

2016. 6. 27. 20:01Yosm Special




* 기사와 사진은 직접적 연관이 없습니다.


S상고 2학년 세무보건행정학과 학생 A씨는 틈틈이 음식점 서빙 아르바이트를 해왔다. 어느 날은 일하는 도중 손가락이 찢어지는 사고가 났다. 점장은 일할 사람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외출을 막았다. 지혈이 되지 않아 피가 뚝뚝 떨어지는 지경에 이르자 그제서야 병원에 가는 것을 허락받았다. 하지만 수중에 돈이 없었던 A씨는 약국에서 지혈제를 사서 지혈만 하고, 며칠 뒤에 병원에 가서 상처를 꼬맸다. 하지만 사업장에 치료비를 달라고 말하지 못했다. 학교에는 이전에 알바를 한다는 이야기를 꺼냈을 때 그만 두라고 했기 때문에 눈치가 보여 털어놓지 못했다. A씨는 학교에서 노동권교육을 받은 경험이 없다.


N공고 3학년 화학공업과 학생 B씨는 학교 교육에 만족하고, 현장실습에 불안과 기대를 동시에 가지고 있다. 화학공업과를 선택한 이유는 하얀 가운을 입고 실험을 하는 것에 매료되어서다. 빵을 직접 만들고, 포도주가 발효되는 과정을 지켜보는 등 학교에서 했던 실습을 가장 즐거웠던 기억으로 가지고 있다. 오는 2학기부터 하게 될 산업체 파견형 현장실습에 대해서는 학교 안 실습보다 더 고된 일을 하게 되지 않을까 걱정되지만, 직접 일터에 가서 일을 해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현장실습 중 사고 소식에 남일 같지 않아 걱정은 되지만, 선배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리 위험하지는 않은 것 같다. 아무래도 일터 사람들과 환경에 따라 다른 것 같다.



지난 5월 두 청소년 C씨, K씨가 일을 하다 죽었다. C씨는 지난해 12월부터 현장실습기간 및 수습기간 3개월을 포함한 5개월 간 하루 11시간 이상 분당의 한 외식업체에서 일했다. 7일, 상사에게 그만두겠다고 말하고 일하던 도중 사업장을 나가 자살했다. 생전 친구와 주고받은 문자메시지에서 그는 자신이 양식파트에서 하는 일이 ‘욕먹기’라고 농담처럼 말했다. 그의 전공은 인터넷쇼핑몰이었다. [한겨레 16.06.15]

K씨는 서울 지하철 2호선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 안쪽으로 들어가 센서를 고치던 도중, 정비 중임을 모른 채 진입하던 지하철과 스크린도어 사이에 끼여 숨졌다. 작년, K씨는 공고 전자과를 다니다 3학년 2학기 도중 서울메트로의 스크린도어 설비 외주업체인 은성PSD에 조기취업했다. 서울메트로에 직접 고용될 것을 꿈꿨으나 오히려 해고 위기에 처하자 3월부터 동료들과 함께 피켓 시위를 해왔다.



그들의 죽음은 갑자기 일어나지 않았다

11년 전부터 반복된 "현장실습제도 폐지하라"


둘의 죽음에는 공통점이 있다. 1) 학교를 졸업하기 전 현장실습, 조기취업 등의 형태로 노동을 시작했다. 2) 동료나 상사의 폭언 등 위험한 노동 환경으로부터 보호 받지 못했다. 3) 8시간 노동, 주 5일제가 무색하게 혹사 당했다. 4) 숨지기 전까지, 학교는 그들이 노동권을 침해 당하며 위태롭게 일하는 것을 몰랐다. 그리고 그들의 죽음은 갑자기 일어나지 않았다. 닮은 수많은 혹사와 죽음이, 뒤따른 대책과 도돌이표가 있었다.


2005년,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이하 청노넷)는 간접고용 현장실습 실태 보고’를 발표했다. 보고서에는 학습과 관계없는 저임금 장시간 단순노동에 시달리며 학교와 파견 업체, 사용 업체 어느 곳에도 호소할 수 없는 실습생들의 비명이 빼곡했다. 청노넷은 간접고용 형태의 현장실습만이라도 당장 중단하고, 실습생들의 노동권을 보장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하며, 노동인권교육을 시작하라고 촉구했다. 현장실습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학생들을 산업체에 값싼 노동력으로 제공하는 역할만 하고 있음을 지적하며, 근본적 대책으로 현장실습제도 폐지를 제시했다. 그해 11월, 안전장치 없이 일하던 실습생이 엘리베이터에서 추락해 사망하는 사고가 일어났다.


이듬해 5월, 교육부는 ‘실업계고 현장실습 운영 정상화 방안’을 내놓았다. - 3학년 2학기 교육과정의 3분의 2 이상을 이수한 후 - 졸업 후 해당 산업체에 취업이 보장된 경우에 한해 현장실습을 시행할 수 있게 하며, - 조기취업과 간접고용 형태의 실습을 금지했다. 그러나 2008년 4월 이명박 정부는 ‘불합리하고 비효율적인 규제를 혁파하겠다’며 이 지침을 폐기했다. 이후 학교 자율화 정책으로 특성화고의 취업률 경쟁이 시작되었다.  



학교안 실습장 노후화... 예산을 지원받는 방법은 취업률을 높이는 것 뿐

현장실습 폐지 주장했으나 오히려 기간 늘리는 '도제교육' 사업


정부는 ‘2011년 25%→2012년 37%→2013년 60%’로 수직상승하는 취업률 목표치를 내세우고, 달성에 따라 예산을 차등지원하겠다고 밝혔다. N공고 전기과 교사 D씨는 “2007년, 특성화고 직업교육을 완성교육에서 과정교육으로 바꾸면서 특성화고에 지급되던 고용훈련촉진기금 8천억원이 전문대에 지급되고 있다. 근 10년 간 특성화고가 예산지원을 거의 받지 못하면서 학교 실습장의 기자재가 노후화되고 있다. 예산을 지원받을 수 있는 방법은 취업률을 높이는 것 뿐이니 학교에서도 현장실습을 아무데나 보내고, ‘도제교육’ 등의 사업을 받아 운영할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나중에 좋은 곳에 취업할 수 있다’고 희망을 주어야 하는데, 사기 치는 것 같은 심정이 든다. 그래서 3학년 담임을 맡기가 힘들다.”고도 덧붙였다.


‘스위스 도제식 직업교육’을 본땄다며 홍보된 산학일체형 도제교육(재학생 일학습 병행제)은 2~3학년 동안 학기 당 2개월 가량의 현장실습을 교육과정에 편성하는 제도이다. 1학년 2학기에 학생들의 수요를 조사해 1개 학과 2개 반을 편성한다. 기존의 현장실습이 3학년 2학기 하반에 2개월 가량 이루어지던 것에 비해 시간이 크게 늘어난다. 2012년 현장실습 내실화 방안에서 처음 예고되었고, 2014년부터 14개 특성화고에서 시범운영되며 점점 운영 학교 수를 늘려가고 있다.



실습은 학교 안에서, 취업은 졸업 후에

열악한 일터는 그대로 두고 취업률만 높이라니...


도제교육 시범운영학교인 W공고 자동차과 교사 E씨는 “특성화고 학생들이 졸업 후 산업 현장에 안정적으로 적응할 수 있게 한다는데, 거기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학교에서 채울 수 없는 것인지 의문스럽다. 만나왔던 업체관계자의 말로는 회사구성원과 원만하게 생활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했다. 그런 능력은 문예활동, 체육활동, 자치활동, 노동인권교육 등을 통해 키울 수 있지 않겠는가. 인문교육, 직업교육을 비롯해 다양한 교육과정을 제공하는 것이 국가의 역할이고 학생들은 특성과 지향에 맞게 학교를 선택한다. 여기에 (중소기업 인력난 해소, 취업률 높이기 등) 다른 목적을 끼워 넣는 것은 교육을 수단으로만 보는 것이다. 산업 현장의 여러 조건과 학생의 요구가 맞지 않아 취업률이 높지 않은 것을 학교의 문제로 규정하고 (도제교육 등) 교육과정의 변화를 요구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비판했다.


그렇다면 현장실습제도는 어떻게 변화해야 할까. E씨는 말한다. “취업연계형 현장실습은 폐지하고 졸업시점에 취업가능한 일자리를 연계하면 된다. 전공교과의 심화를 위한 현장실습이라면 1개월을 넘지 않는 체험형, 관람형 프로그램을 개발하면 된다. 이는 정부의 개선방안에도 들어있는 내용이나 학교별 취업률 경쟁을 부추기는 정책 때문에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



현장실습이나 취업으로 전문교과 수업 대신하는 학교

노동권 수업은 교사 개인의 몫, 안전한 노동은 학생 개인의 몫


전문교과를 현장실습, 조기 취업으로 대체함으로써 노동권 교육이 설 자리가 없다는 비판도 있다. D씨는 "현장실습생을 얼마나 빨리 쓰느냐에 따라 인건비 절감효과가 있어 기업은 (현장실습/ 조기취업을) 원한다. 특성화고는 전문교과와 일반교과가 나뉘어있는데, 일반교과를 1학기에 다 채워버리고 2학기 후반에 전문교과 수업 대신 현장실습이나 취업을 시키고 출석을 인정하는 식이다.”라며 기업의 이익을 위해 학생들의 학습권이 침해당하는 현실을 비판했다. 노동권 교육 상황에 대해서는 “(학교가 가르치는 것이 아닌)나 혼자만 가르친다. 공업일반이라는 과목 안에 노동조합의 권리와 의무라는 부분이 3~4p 있는데 확장시켜서 노동권 수업을 하고 있다. 학생들의 반응도 좋다.”며 아쉬움을 내비쳤다.


안전교육은 어떻게 되고 있을까. B씨, D씨의 N공고는 안전교육연구 시범학교이기도 하다. 학생 B씨는 안전교육에 대해 “어떤 옷과 장비를 착용하고 무엇을 조심하라는 정도로 꽤 여러차례 있었다.”고 기억했다. 교사 D씨는 “세월호 참사 이후 굉장히 다양하게 하고 있지만, 방향이 잘못되었다. 마땅히 인권 중 사회권의 하나로 보장받아야 하는데, 국가나 사회의 역할과 책임이 아니라, 개인이 역량을 키우고 조심해야 한다고 말한다. 세월호 사건으로 예를 들면 선박 규제 완화나 정치권 로비, 비정규직 선원들의 처우 등을 짚지 않고, ‘학생들은 일단 뛰어내려서 살 수 있어야 해’라고 가르치는 식이다. 행사나 실습을 할 때도 행정 서류를 굉장히 많이 제출하게 한다. 응급구조사를 배치하거나 시설물을 안전하게 수리하는 것처럼 돈이 드는 대책은 피하면서 행정절차를 늘리고 학생 개개인의 의식만 높이려 한다”며 정부의 실속 없는 학교 안전 대책을 비판했다.



청소년은 이미 노동하고 있다


많은 청소년들은 노동을 앞두고 있을 뿐 아니라, 이미 노동하고 있다. 학교는 노동을 하게 될 때 보장받아야 할 노동권과 안전권을 학생에게 가르칠 의무가 있다. 하지만 더욱이 직업교육을 담당하는 특성화고는 현장실습, 조기취업이라는 명목으로 학생들을 값싼 인력으로 기업에 제공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학생들은 학교가 연결한 일터와 스스로 찾은 일터 모두에서 노동권을 침해 당하고도 대항하지 못하며 위태롭게 일한다. 그 배후에는 사망 사고가 날 때에만 대책을 반복하지만 근본적인 개혁은 피하는 정부가 있다. 학생 A씨는 “학교는 지금 학생들이 하고 있는 일은 쓸데없고 나중에 취업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교육한다. 그래서 지금 일하는 학생들은 노동권이 뭔지도 모르고 지낸다. 취업보다 중요한 게 무엇인지 가르치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밀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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