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의심만으로 가방이 뒤적여질 수 있었던 우리들

2016. 3. 25. 20:21칼럼-청소년의 눈으로

'테러방지법 이전부터 감시와 통제를 받아온, 우리는 한국의 청소년이다.'                                                                                                                                                                                          


△ 한국 학교의 흔한 휴대폰'수거'가방 (photo by 스트리)



의심만으로 가방이 뒤적여질 수 있었던 우리들

테러방지법 이전부터 감시와 통제의 대상이었던 청소년 


“우리는 여러분을 믿습니다.”

가방을 열어놓고 나가라며 수련회 조교가 한 말이다. 말로만 듣던 소지품검사였다. “속옷도 있는데, 어떡해?” “원카드도 안된대?” 좀 전까지 일장 연설 앞에 ‘앞으로나란히’ 줄 서 있던, 조금이라도 떠들면 윽박지름을 당하던 우리는 걱정과 불만을 제대로 꺼내 놓지 못하고 소곤거리며 강당 밖으로 밀려났다. 믿는다면서, 왜? 머릿속에 물음표가 떠올랐다. 하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핸드폰을 포함해 조금이라도 책잡힐만한 물건을 자진해서 내놓는 것뿐이었다. 5분 쯤 바깥에 멍하니 있었던가, 다시 강당으로 돌아와 누가 헤쳤는지도 모를 가방을 다시 꾸려 닫았다. 몸 더듬고 신발 벗겨서 검사하는 곳도 있다던데, 그러지는 않아서 다행인걸까?


이것은 3년 전, 중학교 3학년이던 나에게 일어난 일이다. 그리고 올 3월, 테러방지법이 통과되어 sns 지인들은 ‘대통령님 지금까지 제가 올린 글은 고양이가 쓴 글입니다’ 따위의 드립을 치고, 걱정하던 국정원 사찰이 실제로 일어났다며 사후통지서 인증샷을 올리기도 했다. 많은 사람들이 테러방지법의 문제점으로 ‘의심만으로 정보를 국가기관이 열람할 수 있게 되는 것’을 지적했다. 반정부적인 표현을 공개적으로 하면 그것을 핑계로 사찰 대상이 되어, 정부비판에 조심스러워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난 그런 문제의식에 약간 무덤덤했다고나 할까.

 

 

테러방지법 통과에 무덤덤했던 이유

 

청소년인 나는 정보인권이 없다시피한 삶을 살아왔다. 학교는 전용 가방을 구매해가면서까지 우리의 핸드폰을 매일 압수했다. ‘반납’, ‘보관’이라는 말로 순화하지만 틀렸다. 원래 학교 것이 아니라 우리 것이니 반납이 아니다. 원할 때 맡아주는 것이 아니라 맡게 해주지 않으면 몇 날 압수하겠다고 협박하니 보관이라고 부를 수 없다. 이건 압수다. 엄연히 우리의 물건인데 빼앗아가는 것이다.


그것도 핸드폰이 보통 물건인가. 메신저 대화 기록과 메모 또 사진, 스마트폰이라면 검색기록과 로그인 정보까지 나에 대한 정보가 가장 많이 저장되는 작은 컴퓨터나 마찬가지다. 또 가장 편리한 학교 내외 사람들과의 연락수단이다. 쉬는 시간은 화장실 가고 수업준비하기에도 짧고 자유시간은 없다시피 하다. 학생의 다른 반, 학년 교실 출입을 제한하고 있는 학교도 상당수다. 그러니 핸드폰을 뺏기면 학교가 끝난 후나 휴일의 약속을 학교에 있는 동안은 정할 수 없게 된다. 동아리문화, 학생참여활동이 사장되고 학생들의 친구관계가 같은 반 안으로만 좁혀지는 이유 중 하나라고 굳게 믿는다. 수업시간에 집중하게 한다는 대표적 의의 외에 이런 면에서도 입시경쟁에 일조한다. 얼마나 삶을 잿빛으로 만들 생각인지?


동시에 학교 안에서 인권침해 사건이 일어났을 때 증거를 남기거나 즉시 신고하거나, 학생들 사이에 알려 여론을 형성할 통로도 차단된다. 학생이 체벌 장면을 촬영해서 인터넷에 올리면 교권침해다, 엄살이다 비난 받곤 한다. 그런데 정부가 잘못된 일을 할 때 시민이 나서야 하는 것과 똑같이, 학생도 학교나 교사가 잘못된 일을 할 때 나서야 하는 거 아닌가. 대다수의 학생들은 나설 용기를 내기도 전에 나설 수 있는 방법을 빼앗겨 버렸다. 방법을 찾아 용기를 낸 학생을 응원할지언정 욕하지는 말자.


그래도 핸드폰 안을 들여다보는 건 아니지 않느냐고? 지난 13~14년 서울의 11곳 학교에서는 '아이스마트키퍼'라는 스마트폰 감시통제앱으로 학생들의 스마트폰을 학교가 한꺼번에 관리하는 방식의 사업이 시범운영 되었다. 교육청에서는 사업을 접었지만, 학교의 앱 사용을 금지하지는 않았다. 15년 4월부터 만 16세 미만 청소년들은 스마트폰을 개통함과 동시에 유해매체물 차단 앱을 깔게 되었다. 만 16세 미만이 아니더라도 독자 계약이 불가능한 청소년은 친권자/부모의 의사에 따라 앱을 깔게 된다. 어떤 매체물이 유해한지는 당연히 높으신 어른들이 정해서 떠먹여주지 우리가 판별할 수 있는 게 아니니라. 메신저로 욕설 비슷한 단어라도 주고 받으면 바로 부모에게 학교폭력 위험 알림 문자가 간다. 한 동갑 지인은 카톡으로 ‘*시 발송되었습니다’라고 보냈다가 ‘시 발’을 앱이 욕설로 인식해서 부모에게 문자가 보내졌고, 밤늦게 핸드폰을 사용하고 있던 게 들켜 혼이 났단다. 어떤 친구와 어울리는지 연애를 하는 건 아닌지 알기 위해 메신저, 통화 내역 등을 검사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범죄를 저질렀으리라 의심되는 경우에도, 인권보장을 위해 의심만으로는 함부로 압수나 검사 등을 하지 못하도록 법으로 정해놓은 것이 ‘영장주의’다. 한국도 영장주의 국가라는데, 이전에는 반쪽만 영장주의였고 테러방지법이 통과된 지금은 이제는 반쪽도 아니라고 해야 마땅하겠다. 학교에서 핸드폰 뺏기고 소지품 검사 당하고, 이건 아니다 싶은 것도 말하지 못하고 혼자 삭히며, 학교폭력 의심 문자가 가서 핸드폰을 뺏기거나 대화 내용을 검사 당할까봐 쩔쩔 매는, 자신에게 유해한 컨텐츠와 유해하지 않은 컨텐츠를 스스로 감별하고 제어할 능력도 없다고 낙인찍힌, 테러방지법 이전부터 감시와 통제를 받아온 우리는 한국의 청소년이다.

 

- 밀루 (18, 탈학교청소년)